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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남산에서 내려다 본 서울 2011년

by 미블리 와이프 2017.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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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서 내려다 본 서울풍경..

 

밤에 가서 보면 야경이 정말 예술인데,,

낮에가니까..

정말 삭막해보인다..

빽빽히 들어선 건물들..

정말 촘촘하기도 하지..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한

이곳 서울..

 

오늘도 난 다짐한다..

여유를 가지고 살자고..

출발점이 똑같다고 해서 결승선에 들어가는 것도 똑같은 건 아니니까..



남산타워는 서울 야경 명소 중에서도
엄지로 꼽히는 곳이라
저녁 시간이 되도 관광객과 데이트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는 곳이에요
그래서 관람대에서 잘못 사진을 찍으면 흔들리기 안성맞춤이에요.


특히 저녁 시간이 되어 남산타워가 뿜어내는 아우라는
그 높이도 그렇지만 이곳이 수도 서울 한복판에
우뚝 솟아 시간에 따라 변하는 색과 어울려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곳이에요.


그리고 남산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움이 어찌 그 탑에만
국한이 되겠는지요 남산에서 바라보는
명동과 강남의 휘황찬란한 모습은 중국에서 관광 온
요우커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지요
정말 대한민국이 잘 사는 나라구나라고 느끼는 곳이기도 해요.


저녁이 되어 명동을 비롯해 건물에 불이 밝혀져
멀리는 북한산 스카이웨이까지
그 밑에 청와대를 경비하는 부대의 불빛까지 보이기 시작하면
서울의 북쪽 하늘 밑으로 보이는 북한산의 실루엣과
명동의 화려한 불빛은 어떤 모습보다도 역동적이고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남산에서 바라보는 명동의 화려한 조명이
우리나라의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모습이었다고 부정을 하는 사람들은 아마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요즘의 젊은 사람들은 저 명동의 쓰라린 역사도
찾아서 배우셨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저 수많은 열쇠들을 달아논 모습에서 정말 물질이
풍부한 세상이라는 것을 저는 느낍니다.
저 어릴 때 지금으로 보면 옛날 도둑이 많던 시절에는 저런
열쇠가 없어서 도둑을 맞는 집안이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그 열쇠를 저렇게 재미 삼아 장난삼아 사용도 하지 않고
사랑의 징표로 달아 비바람을 맞도록 하는 이 풍요로운
세상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 장면이 스쳐 지나가기도 합니다.


남산에서 바라보는 명동에서 북한산 밑의 모습이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고 하면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한강 건너와 남산 남쪽의
모습은 바로 우리나라가 사우디에서 돈을 벌고 월남에서
죽은 군인들의 목숨 값으로 벌은 그 돈으로 이렇게 엄청난 도시가
들어섰다고 보시면 되는데
그때 그렇게 외국에 근로자로, 군인으로 갔던 사람들
세월호처럼 이렇게 오랜 시간을 물고 늘어지지 않았어요.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이태원 혹은 한남동에서
말죽거리를 가려면 배를 타고 건너야 했고
지금 반포동이라고 하는 곳도 배를 타고 건너야 했던 곳이고
지금 봉은사가 있는 곳도 뚝섬에서 배를 타고 건넜던 곳이에요
그리고 저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한강 백사장에서 수영을 하고
모래찜질을 했던 시절이고 물 위에서는 기생들이
장고를 치며 뱃놀이를 하던 그런 곳이었어요.


이런 흘러간 모든 역사를 볼 수 있는 남산타워는
서울 야경 명소뿐만 아니라 이렇게
대한민국의 서울이 어떻게 발전이 진행되었는가를 볼 수 있는
아주 유일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두고 강북과 강남으로 가르는데
즉 강남은 우리나라가 비약적인 경제발전으로 이루어진 곳이지요.


제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우리나라가 
얼마나 못 살던 때인가 한번 이야기해볼게요
서울에서 그래도 유복한 부잣집 아들로 살았던 저입니다.
국민학교 시절부터 집에 백색전화가 있었고
텔레비전이라고 하는 상자를 보고 자란 사람이었으니 까요.


대학생활 당시 우리가 지금은 너무 흔해서 중고라고 하면
거저 줘도 입지를 않던 청바지가 우리나라에 들어왔는데
그것이 전부 구호물자로 들어왔어요
그럼 그중에 상태가 좋은 것이 바로 남대문 시장으로
몰래 빠져나와 도깨비시장에서 팔았고 그것을 사서 입고 멋을 내던
그런 시가가 저 대학 시절이었어요
한마디로 변변한 옷도 없었던 시절이었다는 것이지요
그 남대문 시장이 바로 명동 옆에 붙어 있는 것이지요.
필동에는 양아치 즉 재건대라고 하는 넝마주이들 막사가 있었고요.


그런 세월이 10여 년 흘러가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청바지 새것을 사 입을 형편이 되었을 때
그때부터 청바지 새것이 들어오기 시작을 했는데 그때 우리는
그 청바지를 쌍마, 리, 빅스톤 이렇게 불렀고
그 이상의 청바지도 없었던 시절이었어요 이때 문제가 생깁니다.

남대문 시장에서 청바지를 새것과 헌것을 모두 팔던 시장이다 보니
청바지만 전문적으로 훔쳐 가는 도둑이 생기기 시작을 했어요
그때는 모든 빨래를 마당에다 걸던 시절 빨랫줄에 걸린
청바지를 훔쳐다 남대문에다 팔고 그것을 사서 입고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니 용돈이 궁하면 자신이 입고 다니던
청바지를 남대문에 파는 그런 시절이 바로 강북 남대문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중국의 부채는 GDP의 250%이다
GDP의 200%가 넘는 나라는 IMF의 위험이 있다.

서울 야경 명소 구경을 끝낸 요우커들이
다른 사람이 사진을 찍건 찍지 않건 자신들의 사진을
찍기 위해 그곳에 모여서 사진을 찍는 이런 무례한 모습을
여러분들은 무슨 이유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회사가 중국에 있다 지금은 월남으로 옮겨서 잘 알고 있어요
그 들은 중국과 대한민국의 관계를 중국이 첫째 일본이 둘째
대한민국은 막내라고 해요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우리나라에 한 번도 이익을 준 적이 없었어요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훨씬 잘 살을 때는 감히 중국인이
한국에 와서 이런 무례한 짓을 하지 못했는데
중국이 달러 보유고가 높아지자 우리나라 정치인 들이 그들에게
미리 아양을 떨기 시작하는 작금의 사태를
여러분들은 바로 보셔야 해요.

중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달러가 3조 3000억 달러인데
중국이 IMF 유동 권장 달러가 3조 2000억 달러에서
4조 달러라고 합니다. 그럼 중국의 달러 보유고는
거의 바닥들 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고 하면
중국이 절대로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무역 보복이 어렵다는
경재 학자들의 전망입니다.


만약 중국이 우리나라에 무역 보복을 본격적으로 하면
우리는 생필품을 수입을 하는 경우지만
중국이라는 나라는 우리나라에서 물건을 사다 고부가가치의
무건을 조립해 미국에서 우리나라에서 손해 보는 적자보다
훨씬 더 많은 흑자를 보는 나라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무역 보복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찜찜한 마음으로 남산 야경을 구경을 하고 
내려와 백범광장에서 바라본 우리나라
발전의 상징 남산타워와 케이블카 탑승장의 모습 그리고
그 옆에 자리하고 있는 송신탑의 모습은 장엄한 자랑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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